Orbis Tertius
서재
우연적 데미우르고스
소설

우연적 데미우르고스

Incidental Demiurge

Initial Condition

우리가 사는 세계가 물질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일상에서 깨닫기 힘들다. 바다에 빠지거나,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지 않은 이상, 사람은 기체 분자가 대기 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알 수조차 없다. 바람조차 공기의 흐름이라는 사전지식이 없었다면 하나의 독립적인 현상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천상에서 천체가 영구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에테르가 우주에 가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던 옛 과학에 공감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남자는 항상 그리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생명의 근원이면서 순환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액체가 그를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머리가 수면 위로 빠져나왔다가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고 있었기에 완벽하게 둘러싸인 모습은 아니었다. 남자는 몽롱한 정신으로 물이 기도를 통해 호흡기로 들어가는 고통이 옅어져감을 느꼈다. 먹을 대로 먹은 물로 인한 포만감도 멀어져만 가고, 불과 몇 분 전까지만해도 귀가 멀 것처럼 크게 들리던, 사람들의 찢어지는 비명도 아득해졌다. 육체 뿐만 아니라 마음도 물이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사력을 다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힘 없이 축 늘어져 파도에 이리 저리 휩쓸려 가는 육신들도 눈에 들어왔다.

조금씩 현실에서 도피하듯 멀어져가는 생각으로는 에테르로 인해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영원히 운동하는 천체들처럼 보였다. 나도 곧 저렇게 되겠지. 남자는 물에 떠내려가도록 몸을 맡기며 생각했다. 되짚어보면 그는 물에 빠질 일도 없었다. 그는 홍수가 들이닥친 지역에서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으니까. 내가 왜 여기로 왔을까? 남자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의 가슴 한편에 무언가를 망각했다는 생각이 자리했다. 그의 근처로 어린 여자아이의 시신이 떠내려왔다. 그는 끔찍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자신의 딸도 저만한 나이였다. 내가 저 아이의 부모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찢어질 터였다. 그 순간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등줄기를 타고 전율이 내리쳤다. 눈 앞에 푸른 섬광이 보이는 듯한 착시가 나타났다. 저물어가던 넋이 화산이 터지는 것 같이 폭발적인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온통 거무튀튀하게 흑백의 모노톤으로 보이던 세상이, 여전히 물난리로 인해 아비규환이었지만, 색깔이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이 그를 덮쳤다. 손과 발이 몹시 차가웠다. 통증과는 달리 말단의 감각은 여전히 무뎠지만 이전보다는 나았다.

남자가 잊고 있던 것이 다시금 떠올라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의 작은 천사! 내가 평생을 바치겠노라고 맹세했던 사랑!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는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제 당최 그 두 사람이 어딨는지를 모르겠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팔과 다리를 휘젓고 허둥거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폭풍 앞의 촛불인 듯 사그라들었다. 남자는 있는 힘을 다 해서 고함치려고 했다. 물이 이미 그의 기도를 잠식했는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컥컥거리는 젖은 기침이 쏟아지는 물소리에 파묻혔다. 절대 놓치 않으려했던, 손을 꼭 맞잡고 있던 그의 가족들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남자 자신도 모를 리가 없는 사실이었다.

남자는 식은땀 범벅이 되어 침대에서 눈을 떴다. 안경을 그대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숙면을 취하려고 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작업을 하다가 피곤한 나머지 잠시 눈이라도 붙일 겸 침대에 누웠지만 금방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남자는 벅찬 숨을 내쉬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몹시 그리워 한다면 시간이 얼마가 지나더라도 그 얼굴이 꿈엔들 잊힐리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아주 잔인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은 몇 년이 지나니 유령같은 형상만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만 했다. 그들과 거닐었던 정원, 목마를 태우고 아내를 놀래켰던 장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다가 셋이서 소파에서 잠든 모습. 추억들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정작 그 대상들의 생김새에 대한 기억의 인출을 오히려 방해했다. 손에 금방이라도 잡힐 것처럼 눈 앞에 아른거리지도 않았다. 눈을 감으면 머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광활하고도 칠흑같은 공간에 저 뒤편에서만 아련한 감각으로만 느껴졌다. 뜻은 너무나도 잘 알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안에서만 맴돌다 사라지는 단어처럼 말이다.

기상학자는 밤마다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이 목을 옥죄어오는 것에 신물이 났다. 그는 구역질을 참으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털썩 앉았다. 이제 그에게 찾아오는 펀딩은 거의 없었고 지금 하는 일은 그의 목숨줄을 비롯해서 많은 이의 밥그릇을 앗아갈 작업이었지만 그는 반드시 해내어야했다. 누군가는 속죄라고도 하고, 혹자는 본인이 잃었으니 다 같이 죽자는 자폭으로 오인하겠지만 지독한 자기 혐오와 자괴의 수렁에 발을 들인 그는 오히려 본인의 과오를 부정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출 수 없고, 멈추어서도 안되었다.

현재 쓰고 있는 논문의 대부분은 이미 완성되었다. 그는 수십 편의 논문을 작성해오고, 대부분은 매우 저명한 학회지나 학술지에 투고하여 성공적으로 게재되었다. 그러나 이 논문은 그가 이제까지 해 온 연구와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없었다. 기상학자는 더 이상 만나는 사람도 없고, 온라인으로도 연락을 받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말을 꺼낸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지금 이 논문이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 논문이 될 것이다. 단순히 일생일대의 역작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말 문자 그대로 이 논문 이후로는 그 어떤 학술적인 글도 쓸 수 없고 연구도 할 수 없으리라 예상했다.

일생을 기상학자로, 그것도 연구형 인공지능과 함께 전산기상학과 기후학에 전념한 그는 관측을 토대로 새로운 모델을 제안하고 시뮬레이션을 해서 기상을 예측하는 연구를 했다. 물론 원래는 응용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유체역학과 복잡계 이론을 연구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분야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마지막 논문을 수학적 증명 기반의, 어떤 이론의 한계를 증명하는 논문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응용과학자로서 관측 결과를 참고하지 않으며 오로지 사고와 논리만을 도구로 사용하여 지극히 추상적이고 기계적인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고되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그와 산전수전을 겪은 연구형 인공지능 동료도 그의 곁을 떠났기 때문에 철저히 혼자 작업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이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설산에서,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발자국도 금세 지워져서 돌아갈 수도 없는 이의 상황만큼이나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절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점은 그도 처음 써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형태의 글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이 논문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내용은 분명 매우 정교한 수학에 가깝고, 논리로 빚어 놓은 작품이었지만 논문보다는 기고문에 가까웠다. 특히 논문의 본문에 해당하는 내용을 제외하면 모두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특정 학회에 투고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그의 모든 것을 쏟아 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은 부분은 이 논문을 쓰게 된 경위와 동기에 관한 글이었다. 초록과 결론, 방법도 일필휘지로 작성했건만, 이 부분만큼은 쉽사리 완성할 수 없었다. 그의 아주 아픈 기억을 건드리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생의 마지막으로 쓰는 글에서 만큼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야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었을까? 그는 지금까지 쓴 서론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았다.

[몇 년전, 나의 세계는 두 번 멸망했다. 그 중 첫 번째 멸망은 학문적이고 추상적인 죽음이었다. 물론 과학의 진보는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고, 그 이전 세대의 인물에게 필연적인 절망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뼛 속까지 과학자였던 나는 이 멸망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패배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비록 내가 할 일이 모두 없어지고 가족을 어떻게 부양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감정은 일시적이었다. 내가 살아있는 시대에 이런 발견을 목도할 수 있으리라 감히 예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수차례 감격에 젖었다.

기후 위기가 세계의 명운을 결정할 위험한 요소가 되었을 무렵, 과학은 다시 한번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세계 어딘가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을 포함하는 더 큰 이론이 정립되었다. 그 방정식은 유체역학에서의 ‘모든 것에 대한 이론’과 같았으며 이 방정식에 대한 닫힌 형태의 해를 금방 발견했다. 유효 연속체 방정식(Effective Continuum Equation, 이하 ECE)[*** et al.]이라 불리는 그 방정식은 물론 변수가 상당히 많고 해의 식 자체도 복잡하기 때문에 아주 큰 계산량이 필요하지만, 그 변수에 정확한 값만 잘 대입할 수 있다면 정확한 기상 예측이 가능했다. 다만 역연산은 여전히 힘든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이 발견은 인류에게 미래를 확정 짓는 예언서를 가져다 준 셈이었다. 아무리 인공지능의 도움을 입었다고 한들, 한 과학자가 없었다면 이런 인류 최대의 발견은 없었을 것이었다. 나도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웠던 그는 이 방정식을 밤하늘의 우주에서 보았다고 했다. 정말 정신나간 소리 같겠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권위있는 물리학상을 수상한 직후 조현병으로 병원에 수용되었다.

ECE는 유체역학의 성배였다. 인류는 식을 이용해 차세대 비행체와 혈관 치료 로봇, 플라스마 응용 기술을 꿈꿨지만, 이 행성은 그 사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기후 위기라는 단두대 앞에서 ECE의 모든 잠재력, 후속 연구와 기술 개발은 대부분 내일의 비를 맞추는 데에만 투입되었다. 단기적으로, 수치해석과 전산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던 ‘고전’ 기상학자들의 직업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새로운 유체역학 모델이 그 뒤로도 몇 번 등장했으나 모두 ECE의 일부만을 모사하는 아류작일 뿐이었다. 결국 ECE와 이를 이용한 인공지능의 계산과 예측 및 소프트웨어가 우리의 일을 대체했다. 고전 기상학자는 대부분 다른 일을 찾거나 은퇴했으며, 수학자, 통계물리학자, 최적화를 전공한 컴퓨터 과학자들이 그들의 영역을 집어삼켰다. 대격변의 현장 속에서 태풍의 중심에 있던 나는 말하자면, 최후의 고전 기상학자였다.

공교롭게도 두 번째 멸망, 정말 문자 그대로의 몰락이 동시기에 찾아왔다. 우리가 ECE라는 렌즈로 세상을 더 정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세상은 법칙이 깨진 것처럼 기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누군가 우리가 진실을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고도가 높은 곳은 가물고 해발고도가 낮은 곳에는 비가 집중되더니 해수면이 점차 상승하며 육지의 많은 부분이 수몰되었다. 비가 오지 않아야할 곳에서 비가 내리고, 기후 변화로 인해 말라가던 호수의 수면이 갑자기 상승했다. 세계는 빠르게 황폐화되었다. 사람들은 다시금 희망을 잃어갔다. 저지대의 비옥한 땅들, 인구를 부양하던 세계 곳곳의 옥토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높은 지대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목숨만은 건졌으나 삶의 터전과 각자에게 삶만큼 중요한 것들을 잃었다.

더군다나 그런 기상 이변뿐 아니라, 어떤 지역에서는 강우량보다 더 많은 물이 샘솟았다.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지하수에 더해서 지각 깊은 곳과 맨틀 부근에 화학적으로 광물과 결합된 물이 있는데, 그것들이 모종의 이유로 분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이들도 현상의 원인은 파악할 수 없어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심지어 가장 유력한 이론조차도 가설에 불과하기 때문에, 물이 배어나올 때 결합된 다른 광물은 지표에서 검출되지 않고 어째서 순수한 물만이 추출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종의 애드혹 이론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는 없었고, 나도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현재 우리 세계를 덮친 재앙은 비단 지질학뿐만 아니라 여러 학계의 기존 패러다임을 모두 깨부순 현상이었으니까.

대홍수에 한해서는 ECE도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ECE의 예측이 맞다고 해도 대홍수는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그 예측 조차도 시간이 지날수록 오차가 쌓이기 시작했다. 대홍수의 모든 움직임을 ECE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ECE를 의심하는 바람이 학계에 일었다. 어떤 이는 ECE를 완전히 부정하고자 했지만 여전히 대홍수를 제외한 어떤 유체의 움직임에 대해서 ECE는 거의 완벽한 설명을 보였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따라서 ECE를 보완하여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거나, 대홍수를 설명할 수 있는 특수해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모든 시도는 실패라는 종착역으로 도달했다. 대홍수도 제대로 근사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유체에 대해서도 ECE보다 부정확한 이론 만이 나온 것이다. 나는 조금 관점을 바꾸고 싶었다. ECE가 완성된 이론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대홍수라는 현상 자체인 것이다. 그 현상의 본질을 연구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대홍수를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매우 기이한 특성을 지녔다. 이에 착안하여 나는 새로운 이론을 제안했으며, 제법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나는 발표를 망설였다. 이는 내가 비겁한 겁쟁이기 때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그리고 핑계로는 더 확실한 검증을 한 뒤에 논문을 공개하려고 했었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는 난 알고 있었다. 다른 모든 이들이 틀린 것을 보면 나도 똑같은 결말을 맞으리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수십 편의 논문을 썼음에도 진리에 맞서 도전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대홍수의 피해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던 지역이었다. 대홍수의 메커니즘을 알 수 없으니 왜 그랬는지 이유도 알기 어려웠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날, ECE 기반의 방재 시스템은 해당 지역의 침수 위험을 '없음(None)'으로 분류했다. 이 때, 나의 이론이 예측한 결과는 중간, 혹은 그 이상의 위험도에 달했다. 나는 오히려 이때 마음이 한결 편했던 것 같다. 내가 완벽히 틀렸다고, 아내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창밖으로 들이치는 빗줄기가 물리 법칙을 비웃듯 솟구칠 때도, 나는 내 눈보다 모니터 속의 수렴하는 그래프를 믿었다. 아내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을 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도망치는 대신 ECE의 오차 범위를 설명하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비는 멈추지 않았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 좌표를 지정한 것처럼 우리 집 거실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내 딸이 내 손을 놓치고 흙탕물 속으로 휩쓸려 갈 때, 그 아이의 비명은 분지 속에 갇힌 메아리처럼 나의 마음을 끊임없이 지금도 울린다. 그 비명을 듣는 순간 나는 보았다. 대홍수의 본질이 무엇인지, 목격하고야 말았다. 대홍수 속으로 가라 앉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주위를 맴돌았다. ㅇㄻㅇㄴㄹ 무엇보다 내가 괴로운 이유는, 그 작은 손이 내 손에서 벗어나는 찰나, 그 때 느껴졌던 내 작은 천사의 감촉보다 목도한 대홍수의 기이한 성질이 더 생생히 기억난다는 점 때문이다.

나는 살아남았다. 아니, 죽지 못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학계에 복귀하기 위함이 아니며,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함도 아니다. 나는 그저 더 일찍 했어야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을 할 뿐이다.]

마지막 문장을 끝마치고 마침표를 찍으며 그는 손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무의식적으로 일인칭의 주어를 보며 그는 삼인칭으로 고치고 싶다는 직업병적인 충동을 느꼈지만, 문서를 수정하지 않았다. 이미 논문의 형식은 한참 벗어났다. 마지막 글을 이렇게 마무리할 줄은 몰랐지만, 그는 이 기형적인 글자의 나열이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기상학자는 자신이 쓴 글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어렴풋이 짐작을 하면서도 애써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관측한 대홍수는 유효 연속체 방정식의 어떠한 일반 해는 물론이고, 어떠한 특수 해로도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대홍수는 연속체이되 연속체가 아니었다. 샘플링한 신호처럼, 해상도가 정해진 화면처럼 새로운 차원의 물리적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시적인 순간에는 뚝뚝 끊어지는 이산적(Discrete)인 성질을 띠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기고한 글의 학문적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본문에는 적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그 결정적인 증거, 세계가 픽셀 단위로 붕괴하는 듯한 그 위화감은 비단 그 혼자만 본 것이 아니리라.

Search

[교수님, 온라인에 게재해주신 논문 잘 봤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유효 연속체 이론은…]

통계물리학자는 기상학자에게 존경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오랜 기간 받을 수 없었다. 회신이 오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리라

기상학자가 게재한 논문, 지극히 학술적이지만 논문이라고 하기에는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을 가진 글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작금의 상황에서 인터넷과 네트워크도 자원을 아끼기 위해 조심히 사용해야 했지만, 그런 것도 잊게 할만큼 논문은 말도 안되는 주목을 받았다. 기상학자는 그야말로 세계를 파괴한 사람의 반열에 이름을 올랐고, 불후의 명성을 얻었다. 죽음의 신과 세계의 파괴자는 다른 이가 아니라 그가 얻어야할 이름이 되었다. 유효 연속체 이론이라는 금자탑은 빛이 조금 바랬으나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상장이었다. 그리고 망치를 들고 나타난 초인이 탑을 형체도 분간할 수 없도록 부숴버렸다. 적어도 대홍수에 대해서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누군가에게, 이미 그 탑의 빛바랜 부분에 집중하던 이들에게는 기상학자의 논문은 선봉대의 기수와도 같았다. 통계물리학자는 유효 연속체 방정식의 피로 쓰여진 오차를 생각하면, 빛이 조금 바랬다고 표현하는 것조차 아주 관대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기상학자는 자신이 대홍수에서 목격한 어떤 것을 바탕으로 아주 정교한 수학적 모델링을 제안했다. 통계물리학자가 보기에 이 논문에서 기상학자가 공격당할만한 부분, 느슨한 연결고리는 딱 한 곳이었다. 증명의 시작을 위해서 수학과 전산학의 추상성을 끌여들여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전제와 공준을 도입한 부분. 물론 이곳에도 일견 타당해보이는 근거는 있었다. 기상학자가 오차가 점점 쌓인 유효 연속체 방정식보다 대홍수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는 알고리즘 및 모델을 거론했다. 이 모델들은 연속체나 유체역학에 속하지도 않고, 그들의 근사에 사용되지도 않으며, 심지어 일말의 연관도 없는 분야의 것도 있었다. 그러나 적절한 가정과 초기조건, 탐색 과정을 조율하면 다른 유체와 전혀 상관없이 대홍수의 패턴을 제법 잘 예측하도록 설계할 수 있던 것이다. 당연히 이런 관측에서 대홍수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시도를 추출하기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었다. 그럼에도 통계물리학자는 기상학자의 논문을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저자의 직관에 자신이 깊이 공감하기 때문일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이런 일을 그녀는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가 별빛과 은하수에서 이론과 방정식의 토대를 보았다고 하던 이야기는 이제 거의 신화가 되었다. 믿지 않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녀는 그 일화가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

그 부분만 지나면 기상학자의 논문은 흠잡을데가 없었다. 공준으로부터 나오는 증명 과정은 그것이 다루고 있는 내용의 의미와는 정반대로, 연속적인 함수를 보는듯이 매끄러웠다. 그러나 통계물리학자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이는 기상학자의 능력이 부족해서 발생한 문제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기상학자는 논문에서 유효 연속체 방정식이 대홍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증명만을 제외하고 그 어떤 발걸음도 내딛지 않았다. 충분히 추가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모델이나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모습이 그녀의 눈에는 선하게 보였다. 심지어 공준과 전제를 위해 사용한 여러 알고리즘들이 대홍수를 예측하는 모델이 아니라고 손수 반박했다.

오히려 결국 그렇다면 기상학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그가 잠적했으니,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의 논문을 필사적으로 읽은 통계물리학자도 그것을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통계물리학자는 그것을 일절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기상학자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녀가 그저 관심있는 것은 자신이 기상학자의 이론을 완성시킬 실마리를 쥐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그녀의 미쳐버린 남편이 남긴 마지막 유산을 부정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녀의 남편은 사적으로는 그녀의 평생의 동반자이면서 업무적으로는 가장 협업을 많이 한 동료였다. 그가 발표한 유효 연속체 방정식은 그녀가 남편과 같이 일구어낸 업적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남편을 앗아간 저주였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그녀의 남편을 미치게 만든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그녀가 외부에 절대적으로 함구한 사실이 있었다. 천상에서 움직이는 천체 속에서 지상의 진리를 보았다는 서사는 외려 낭만적일뿐, 사람이 미쳤다는 증거로는 부족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 뒤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증명할 수도 없는, 반증조차 불가능한 어떤 명제를 믿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도 이를 설파했다. 진지하게 공동 연구 주제를 제안하듯이. 그러나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쩔 때는 혐오감이 생기기도 했다. 자신보다 더 과학을 사랑하고 삶의 지침으로 여겨왔던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까? 그리고 그런 증세는 점차 심해져서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통계물리학자는 남편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를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되뇌이며 남편을 직접 정신병동에 입원시킨다는 문서에 서명을 한 뒤로는 자신이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잘 몰랐다. 자신이 이 이론을 완성시키고 싶은 것인지, 기상학자의 이론을 빌려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여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인지.

통계물리학자는 기상학자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기상학자의 요점은 결국 대홍수가 유체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결국 그는 대홍수를 이산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수학적 모델을 도입했기 때문에 아예 차치할 사항은 아니었지만, 골자는 대홍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실재와는 사뭇 다른 속성을 지닌다는 것이었다. 혹은, 아주 추상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찾던 실재일수도 있었다. 이산 연속체 함수(Discrete Continuum Function, DCF)는 결국 통계물리학자가 완성한 이론이 되었다. 유체역학이라는 실제적 문제를 탐구하는 이론이었던 유효 연속체 방정식에 반해, 이산 연속체 함수는 조금 더 추상성이 강화된 이론이었다.

그런 이론을 세우는 데에는 통계물리학자가 해석한 대홍수의 관측도 큰 역할을 했다. 현재의 대홍수는 유체의 연속성을 위배했다. 이 물은 지형의 기울기나 대기의 압력차에 의해 이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통계물리학자는 지난 수년간의 수위 상승 데이터를 통해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수위는 공간적 좌표(x, y, z)에 종속된 변수가 아니라, 시간(t)에 따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전역적 임계값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유효 연속체 방정식에서 물은 질량을 가진 입자의 집합으로, 주변의 물리적 상호작용에 의해 운동한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물은 물리적 실체가 아닌, 마치 공간상에 그어진 삭제선처럼 작용했다

이 삭제선은 특정한 감쇠율 함수를 따른다. 이 함수는 지표면의 복잡성이나 인류의 구조물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정해진 수식에 따라, 허용 가능한 지표면의 높이를 점진적으로, 때로는 급진적으로 낮춰갈 뿐이었다. 그녀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기존 유체역학의 변수들을 제거하고, 오로지 이 ‘임계값의 하강 속도’만을 변수로 둔 새로운 식을 도출했다. 이 식에는 물의 점성도, 밀도도, 심지어 중력항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시간과 높이, 그리고 하강하는 기울기만이 존재했다. 이것은 자연 현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인위적이고 절대적인 수학적 제약에 가까웠다

[교수님, 제가 미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교수님도 알고 계셨던 것이죠? 분명…]

통계물리학자는 쓰다 만 메일 초안을 지우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론을 발전시킬수록 그녀는 말도 안 되는 결론에 귀결했다. 대홍수의 수위 상승을 결정하는 숨은 변수가 필요했다. 그것은 지질학적 에너지도, 천문학적 인력도 아니었다. 이산 연속체 함수는 유효 연속체 방정식보다 더 많은 변수와 가정을 필요로 했다. 양자역학처럼 연속적인 값들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이산적으로 나누어진 것들의 연속체라는 의미가 강했다. 이 이산적으로 나누어진다는 뜻은 결국 불연속적이고 툭툭 끊기는 분절을 의미했고 그 분절을 어느 단위로 나누냐도 일종의 변수로 작용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숨은 변수에 해당했다.

이산 연속체 함수는 처음엔 단순한 수학적 모델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통계물리학자는 모델을 다듬을수록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이산 연속체 함수의 예측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중력 가속도, 유체의 마찰력 등의 기존 물리 법칙을 빼고 전혀 엉뚱한 가중치를 넣어야 했다. 그녀는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그 숨겨진 가중치가 무엇인지 찾으려 했다.

처음에는 태양 흑점 활동인가 싶었다. 그다음엔 지자기 역전 현상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 어떤 자연 현상과도 그래프가 겹치지 않았다. 통계물리학자는 대홍수와 연관된 데이터를 정말 닥치는대로 삽입했다. 그녀가 구할 수 있는, 그리고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데이터를 다 사용해본 셈이었다. 그녀가 포기하려던 찰나, 무심코 겹쳐본 데이터 하나가 이산 연속체 함수의 오차 범위를 획기적으로 줄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실시간 인구 이동 데이터였다. 이에 착안해서 그녀는 새로운 가설을 도입했다. 이산 연속체 함수 자체에는 포함하지 않았지만, 기상학자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적어 넣었다. 인구 이동 데이터를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았다. 사람 그 자체의 수학적 모델을 고려하면 어떨까? 사람들의 무엇일까, 라고 그녀에게 묻는다면 모든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이었다.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기 보다는, 어떻게든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예측에서 의미를 가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녀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수학적 실재가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 근본적으로 수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철학자들이 논할 법한 허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우주론이 사실인 것인가?

통계물리학자는 어느 늦은 밤에 기상학자에게서 답변을 받았다.

[답장이 늦어 미안합니다. 당신의 논문 초록을 읽어보았습니다. 같은 곳에 도달했군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했다. 기상학자의 메시지는 짧고 건조했지만, 그 내용은 그녀의 가설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다.

[이것을 시뮬레이션이든 뭐든,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존 물리법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독자적인 패턴과 규칙을 따르고 있어요. 일종의 게임과도 같습니다. 부군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죠?]

통계물리학자는 마지막 문장을 차마 소리내서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을 정신병동에 가두었지만, 정작 미친 것은 남편이 아니라 이 세상이었다. 그녀는 질끈 감으며 마른 세수를 하다가 자신의 입꼬리가 올라가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남편의 말이 틀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남편을 제 손으로 정신적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그것이 이미 상관없는 세상, 그 어떤 행동도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세상으로 증명되어선지 몰랐다.

Convergence

우리가 만들어진 세상 속에 있다는 생각, 그 가설이 불러온 광풍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기상학자와 통계물리학자의 논문, 그리고 그들의 대화가 불씨를 지폈다면, 그들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적극적인 행보가 불에 부채질을 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제 인류는 물에 잠길 걱정에 맞먹는, 혹은 그보다 더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공포와 마주했다. 그렇다면 만들어진 세상을 만든 이는 있는가? 그의 의도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일까?

이렇게 거대한 담론이 실존적으로 다가온 것은 유례 없는 일이다. 답이 없는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은 각자의 입맛에 맞는 답을 제작하고 조립하고 비틀어서 새로운 세계관을 구성했다. 사원과 신앙은 무너지고, 데이터 센터가 새로운 성지가 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가장 방대한 세력을 형성한 사람들은 수정주의자였다. 그들은 이 우주의 창조자가 존재하며, 그의 의도는 암시적이든 명시적이든 상관없이 명백히 실존하므로 이를 우리가 따라야한다는 것이었다. 개중에는 컴퓨터 과학자의 이론을 들먹이며, 일반 연속체 모델에서 사람이라는 변수를 그들 나름대로 해석했다. 창조주는 마치 인격신과 같아서, 선행을 베풀고, 선의를 품으면 이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많은 이들이 이 해석을 따랐다. 이 해석은 달콤했다. 그것은 통제 불가능한 재난 앞에서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해결하고, 적어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양자역학과 상보성 이론을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의미로 해석하듯, 그들도 일반 연속체 모델을 그런 가치관과 시선으로 해석했다.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처럼, 이것 또한 과학자들에게 지탄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과학자들이 이같은 흐름에 편승했다. 이미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변수에 의해 자연 현상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이 되었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신뢰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일종의 과학적 알리바이를 제공한 셈이었다.

대척점에는 회의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발상 자체를 거부했다. 여전히 우주는 우주이고, 자연 현상은 우주 내부의 법칙으로만 기능한다고 믿었다. 기상학자와 통계물리학자의 학문적 업적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오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혹은 다른 더 정확한 변수와 모델이 있는데 이것은 그저 근사치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다. 더 정확히 현상의 원인을 직시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는 흔히 우주론에서 따와서 ‘숨은 변수 이론’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들은 대홍수를 더 깊은 심도의 차원에서 활동하는 미발견 입자나 에너지가 이루는 장에서 찾고자 했다. 그들의 눈에 수정주의자들은 번개가 치자 번개의 신이나 하늘의 신이 노했다고 동굴 속에서 바들바들 떠는 고대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절충안이라고 불러야할지, 가장 기이한 형태의 집단이었다. 그들은 가장 특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행동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수정주의자와 매우 흡사했다. 다만 세상이 시뮬레이션임을 인정하되, 창조주의 의도를 수정주의자와는 달리 해석했다. 그 의도는 비직관적일수도 있고, 우리의 이해를 벗어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오로지 흥미나 감정만을 위해서 우리를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 창조주의 가능성을 인격신이라는 하나의 경우로만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해석을 가질 수 있다고 바라보았다. 어떤 이들은 특정 행동을 하면 수위가 내려가거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게임적 법칙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위험한 부류는 실험주의자였다. 그들은 말 그대로 대홍수를 실험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이 세상을 거대한 입출력 블랙 박스 장치로 보고, 대홍수는 우리의 행동, 세계라는 입력에 대한 피드백으로 해석했다. 세계의 운행 자체를 일종의 피드백 루프라고 여긴 것이다. 그들은 온갖 변수, 우주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실험하고자 했다. 곤충부터 산맥의 높이, 심지어는 가상 현실 속에서 특정 행동을 하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지도 확인했다. 그 광기의 끝에는 결국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대홍수라는 시스템을 역설계하고자 사람의 목숨을 이용했다. 도시 하나의 인구가 동시에 죽는다면 대홍수의 수위는 어떻게 변할까? 인간의 비명소리에 따라 대홍수의 패턴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컴퓨터 과학자의 연구 주제는 최적화였다. 연속적인 함수든, 이산적인 조합이든 상관없이 주어진 목적 함수에 대해서 최적해를 찾는 것이다. 최적화는 주어진 제약 조건이라는 감옥 안에서, 가장 덜 고통스러운 자세를 찾는 몸부림이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탐색의 과정을 겪고, 결국에는 수렴이라는 결말로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렇게 자원이 귀한 세상에서는 그의 작업이 매우 중요했다. 그는 어떻게 자원을 분배하고, 인구를 분산하는 지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해왔다.

컴퓨터 과학자에게 메타휴리스틱스라는 최적화 방법론은 그 과정을 지휘하는 지휘자와 같다. 이 지휘자는 악보를 보지 않는다. 메타휴리스틱스는 최적화 대상이 무엇인지, 그 함수가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것은 오로지 메타적인 정보와 프로세스만으로 작동한다. 여행하는 외판원의 경로를 줄이든, 반도체 회로의 배선을 짜든, 혹은 인간 군상의 비극을 다루든, 알고리즘에게는 그저 입력된 값일 뿐이다. 심지어 알고리즘이 차용하는 여러가지 비유, 자연으로부터 빌려온 아이디어는 그것의 원본이 되는 실제 우주나 현실의 존재와 하등 관계가 없다. 적자생존과 진화를 다루는 세대 간의 유전, 강철의 담금질, 혹은 개미의 페로몬과 곤충이나 입자의 무리 등은 그저 해를 찾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이 떠들썩하게 논하는 시뮬레이션 가설에 코웃음을 쳤다. 이제는 정설이 되어 가설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힘들고,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라고 떡하니 천체물리학에 자리잡은 그 이론은 크게 공감하기 힘든 것이다. 그에게 시뮬레이션은 신비로운 가설이나 사변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학문을 탐구하고 문제를 푸는 수단이자 루틴이었다. 대중들이 말하는 시뮬레이션은 마치 게임이나 영화에 가깝다. 그들은 튜링 기계와 계산 이론, 정지 문제와 이산 수학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삶이 누군가의 각본이거나 의도된 연출일 거라며 낭만적인 상상에 빠진다.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의 존재라면, 창조주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숨겨놓지 않았을까?’

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착각인가. 컴퓨터 과학자는 그런 감수성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시뮬레이션은 서사가 아니라 연산이다. 물론 그가 그런 대중매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재미와 학문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고, 이 우주의 뒤편에 숨겨진 진리와는 더욱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던가? 컴퓨터 과학자는 유효 연속체 방정식과 이산 연속체 함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컴퓨터 과학자는 두 이론이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유효 연속체 방정식과 이산 연속체 함수는 비슷한 모델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다른 패러다임과 렌즈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이론이 융합되면 더 좋은 성능을 보여준다는 것도 알아내었다.

그는 모니터의 커서를 깜빡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곧이 곧대로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고 가정해보았다. 그리고 행동주의자, 그 중에서도 실험주의자들을 지독히도 혐오했으나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역겨운 정신과 행동과는 별개로, 그들의 생각 자체, 세계는 일종의 시스템이라는 사상은 그의 의견과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라면 결국에는 최적화 대상, 즉 목적 함수와 시뮬레이션 방법이 상관없듯 그 요소인 우리의 존재조차도 세계의 의도, 창조자의 의도는 상관없고, 더 나아가 세계라는 시스템의 동작과도 상관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야기는 더 끔찍해진다. 컴퓨터 과학자의 입장에서, 메타휴리스틱스 알고리즘이 목적 함수(Objective Function)의 사정을 봐주지 않듯, 시뮬레이션의 주체 또한 그 내부의 요소인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변수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결과값의 수렴만을 원한다. 즉, 창조자의 의도와 피조물의 의미는 서로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이다. 아니, 애초에 상관관계를 숫자로 표현한다면 절대적으로 0이다.

이런 주제를 바탕으로 그는 한 모델을 제안했다. 일반 연속체 모델(Generalized Continuum Model, GCM)이라 불리는 이론에는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메타휴리스틱스의 개념과 최적화 이론을 도입했다. 이산 연속체 방정식보다도 한층 더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으로 거듭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분야와 무섭도록 닮아있었다. 이제는 수학을 떠나 형이상학으로 바라봐야할 정도로 사변적이었다. 그는 최대한 컴퓨터 과학과 수학 내에서 논리를 전개하려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가 절대로 알 수 없는 변수들이 등장했다. 이 우주가 시뮬레이션이고, 인류가 창출해내는 가치나 의미와 완전히 별도의 과정, 우리의 이해를 아득히 벗어난 다른 차원의 무언가가 최적화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면 도대체 왜 대홍수라는 방식인 것일까? 그 과정에서 해의 표현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해가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정보로부터 투영된 홀로그램인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그의 입장에서는 괴물을 막기 위해 악마와 손을 잡은 셈이었다.

탁탁하고 창문을 무언가가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컴퓨터 과학자가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노트북을 덮었다. 더 이상의 계산은 무의미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들이치는 빗물이 방바닥을, 그리고 그의 마지막 논문을 천천히 적시기 시작했다.

Iteration

두 사람은 퀭한 눈으로 연구실에서 서로 등을 맞대고, 각자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으로 춤을 추었다. 타닥거리는 경쾌한 소리 만이 조용한 연구실을 가득 메웠다. 이윽고 두 사람 중 한 명이 타자를 멈추고 신음소리를 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선배, 이거 보세요. 로그를 꽤 자세하게 찍어놨는데, 뭔가 좀 이상해서요.”

후배가 선배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화면에는 현재 그들이 작업하고 있는 것과 전혀 동떨어진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칠흑처럼 새카만 우주 공간에 지구처럼 보이는 푸른 행성이 자리했다. 다만 육지는 거의 없고 새파란 바다와 희끗희끗한 구름 일부 만이 구 표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제가 돌린 세션에서 모든 해의 변화를 세대에 따라 추적한 다음에 데이터를 전부 모아서 이렇게 디코딩하고 시각화를 해보면 이런 영상이 나오거든요?”

“그래, 재밌네. 지금 몇 번 돌렸어?”

“근데 저희 실험하고 전혀 관계 없는… 아니 관계 없는 건 아닌가? 하여튼 신기하지 않아요? 전혀 새로운 정보가 나온거라니까요! 이제까지 저희가 돌렸던 실험이나 다른 최적화 방법의 해들도 추적해보면 이런 현상이 보이지 않을까요?”

“야, 너 이번에도 졸업 못하고 싶어?”

선배는 짜증에 찬 목소리로 후배를 타박했다. 메타휴리스틱스 알고리즘들은 확률론적 행동에 기반하여 추계성이 짙기 때문에 여러 번 수행하여 최적해에 근사한 답을 찾아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통계적인 신뢰성을 위해 그들은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시행이 필요했다. 이미 저번 논문 리뷰에서 지적당한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 민감하기도 했다.

“아뇨…”

“이번에는 게재 성공해야지. 지금까지 결과 정리해놓고 다시 돌려. 저장해놓으면 나중에 볼게.”

“네…”

“선배, 근데 왜 굳이 대홍수 알고리즘(Great Deluge Algorithm)을 사용하는 건가요?”

대홍수 알고리즘은 이미 오래된 알고리즘이었고, 비슷한 계열의 지역 최적해 탐색 알고리즘을 사용한다면 훨씬 최신의 알고리즘도 많이 등장했기 때문에 후배는 항상 의문이었다.

“뭐, 매개변수 스케쥴링하기 편하잖아. 빠르고 쉽고. 어렵게 생각 안하고 여러 번 돌릴 때는 간단하게 사용하기 좋아. 결과 분석하기도 쉽고. 유전 알고리즘 같은 해집단 기반 메타휴리스틱이랑 같이 쓰면 성능도 괜찮고.”

“네… 다시 돌려 놨어요. 이번엔 10번 연속으로 진행하도록 했어요.”

“그래. 밥이나 먹고 와서 다시 하자. 그때쯤이면 결과가 나왔겠지.”

두 사람은 연구실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섰다. 문이 닫히자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최적화 알고리즘이 실행되는 동안 출력되는 로그만이 방의 유일한 광원이 되었다.